내륙에서 잡는 고등어 `안동 간고등어`
새벽 동틀 무렵 강구항에 고등어가 들어오면 우마차꾼들과 등금쟁이(등짐장수)들은 싱싱한 고등어 들쳐 메고 안동 채거리 장터로 출발한다.
채거리 장터까지는 백오십리.
새벽녘 별빛 보고 출발해도, 소도 지치고 사람도 지친다는 황장재 넘어 가자면, 하루해가 짧다.
까탈스러운 양반네들 입맛에 고등어만한 것이 없다하니, 고등어 상하기 전에 열심히 발걸음 재촉할 뿐.
주막집은 멀기만 하고, 가진 건 주먹밥 밖에 없지만, 내일이면 채거리 장터에 봇짐 다 풀어 놓고 주막에 걸터앉아 얼간재비(간고등어) 안주삼아 시원한 막걸리 한잔 걸칠 생각하니 다시 힘이 솟는다.
[안동의 옛날 모습 - 사진출처 : 안동간고등어 공식홈페이지]
간고등어는 안동에서 ‘얼간재비’라고 부르는데 “신선한 고등어에 간이 적당하다”는 뜻의 안동 방언이다.
산으로 둘러싸인 안동에서 생선인 고등어가 지방을 대표하는 향토 특산물이 되었다는 건 특별하다. 그 특별함은 문화적, 자연 지리적 여건이 만들어낸 선물 같은 것이다.
지금이야 고등어가 서민을 위한 흔한 생선이지만 조선시대 내륙지방에서 밥상에 고등어가 올라간다는 것은 부잣집이 아니면 생각 못할 일이었을 것이다. 당연히 양반들이 즐겨 먹는 음식이었다.
양반 많이 살기로 소문난 곳 안동에서 고등어는 많이 필요 했을 터, 가장 가까운 바닷가인 영덕에서 안동까지 꼬박 이틀이 걸리는 거리다.
고등어는 잡으면서부터 상한다고 할 만큼 부패가 빠른 생선으로 우마차꾼과 등짐장수들이 채거리장터에 고등어를 내려놓을 때 쯤 이면 상하기 직전 상태가 된다.
장터에 도착한 고등어의 장기간 보존을 위해 간쟁이들이 염장질(배를 갈라 내장을 꺼내고 소금으로 절임)을 해야 했는데, 그렇게 간을 한 간고등어 맛에는 다른 지역에서는 맛 볼 수 없는 특별함이 있었다.
나중에 과학적으로 증명해 보니 고등어는 부패직전에 맛 효소들이 가장 많이 나오는데, 안동의 지리적 여건이 부패하기 직전에 도착해 간을 해서 부패를 막는 방식이었기 때문에 그 효소와 소금이 ‘간고등어’의 제 맛을 내게 한 것이었다.
꼭 간고등어는 아니었겠지만 내 기억 속 할아버지의 밥상엔 언제나 고등어 자반이 있었다.
고기 한 조각은 꼭 있어야 한다는 우리네 밥상의 철칙 같은 믿음 속에 가장 서민적이었던 고등어가 한자리 차지했을 것이다.
추억이 남아 있는 음식은 언제나 정겹다.
이제 등금쟁이도, 채거리장터도, 염장질 하던 간쟁이의 모습도 다 사라졌거나 옛 모습이 아니지만, 자반고등어 한 숟갈에 밥 한 공기 뚝딱 하던 그 시절의 그리움은 한결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