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는 이들을 위한 따뜻한 벗 - 왜관역 앞 순대국밥
기차를 타고 무작정 떠나고 싶을 때가 있다.
?가진 것도 없고 행선지도 없었지만 여행이 좋았고 길 위에서 만나는 사람이 좋았다. 가진 것 없이 떠난 여행이기에 그 길 에선 항상 풍요로운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역전 앞 허름한 골목길에 간판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 식당에선 연탄불위로 진하게 순대국물이 끓고 있다.?
그 허연 연기 속에 춥다며 국물 한 사발 더 떠주시는 아주머니의 정이 좋았고, 진한 순대국밥에 밥 한 공기 뚝딱 말아먹고선 기차를 기다리며 마시는 소주 한잔도 좋았다.?
기차 타고 여행해 본 사람이면 누구나 한번쯤은 찾게 되는 역전식당.?
뜨내기 손님을 상대하기에 맛은 별로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지만,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왜관역 앞 순대국밥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왜관은 태종 때 일본의 사신이나 교역자들이 머물게 하고 물자를 교역하게 하던 장소로 그 명칭이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는 곳이다.?
낙동강 연안에 위치하고 있어 경상도내의 중요한 상품 집산지였던 이곳에 경부선 철도가 생기고 1905년 왜관역이 문을 열게 되었다.?
그때부터 1백 년이 넘게 왜관역 주변은 오가는 길손을 따뜻하게 맞아주는 곳이다.?
예전 왜관역 앞 순대국밥 집에는 호주머니가 가벼운 사람들에게 국물을 덤으로 챙겨주고, 혼자 소주잔 비우는 사람들에게 조용한 말벗이 되어 주던 할머니가 으레 있었다.?
허기졌지만 마음만은 따뜻하고 풍요로웠던 추억.?
고속도로가 많이 생기고, 철로도 바뀐 요즘, 왜관역은 정비사업을 통해 역앞에 있던 식당들이 거의 없어지거나 주변 골목으로 자리를 옮겼다.?
하지만 50년을 넘게 이어온 ‘연탄불로 끓여 만든 순대국물의 진한 맛’은 여전하다.?
그 덕에 아직도 그 맛을 잊지 못하고 일부러 자동차로, 혹은 기차를 타고 와 이곳에서 순대국밥을 먹는 이들이 있다.?
순대가 우리나라에 전해진 것은 삼국시대 설과 몽고 전래설 등으로 나뉘지만 1800년대 [시의전서]에 처음으로 그 이름이 등장한다.?
고기가 귀하던 시절 순대는 분명, 남김없이 고기를 먹이려던 조상들의 지혜였을 것이고, 국밥은 더 많은 이들과 함께 나눠 먹기 위한 궁여지책이었을 것이다.?
이곳에서는 잘 손질된 곱창에 소금을 이용해 잡내를 잡아 낸 후 선지와 당면과 파 등 야채를 넣어 두툼하게 순대를 만든다.?
터질 듯 통통하게 삶아내어 김이 모락모락 피어 오르는 국물 한 사발.?
조촐한 음식이지만 어떤 이에겐 행복이고, 어떤 이에겐 아름다운 추억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