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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을 빛낸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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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위지(河緯地)

단계(丹溪)
활동시기
조선시대
본관
진양(晋陽)
출생시기
1554년
출생지
1554년
시대
조선시대

상세설명

어릴때부터 형제가 문 밖을 나오지 않고 독서에만 열중하니 이웃 사람이 그 얼굴을 보지 못하였다고 한다. 세종 20년(1438) 문과에 장원 급제하여 벼슬길에 올라 집현전(集賢殿)에서 세종을 도와 많은 공적을 이룩하였다. 문종 때는 병으로 고향에 돌아와서 더욱 학문에 열중할 때, 김종서(金宗瑞), 황보인(皇甫仁) 등의 명신들이 수양대군에게 참살을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벼슬에 나갈 뜻이 없었다.

수양대군이 어린 단종을 내쫓고 왕이 되어 선생을 예조참판으로 불렀으나, 뜻을 굽히지 않고 나가지 않으니 왕의 독촉이 심한지라, 부득이 상왕(단종) 복위를 계획하고자 벼슬에 나가 녹봉(지금의 월급)을 별실에 저장하여 두고(세조의 주는 녹을 먹지 않는다는 뜻) 상왕 복위를 계획하였으나, 김질의 고변으로 인하여 선생을 비롯한 박팽년, 성삼문, 이개, 유성원, 유응부와 더불어 한날 참형을 당하니, 태연자약한 임종의 태도는 보는 이로 하여금 숙연하지 않을 수 없었으며 그의 연루로 선생의 형 강지(綱地), 동생 세지, 소지, 아들 연, 박도 참사를 당할 때 역시 조용한 태도 또한 충신 집안의 장함을 여러 사람에게 역력히 보였다.

그의 범상치 않은 생애는 탄생할 때부터 특이 하였으니 그의 집 앞 시냇물이 출생하는 날부터 사흘 동안 붉게 물들었으므로 이 개천과 그의 호를 "단계(丹溪)"라 부르게 되었다. 지금 선산읍 서쪽 단계천에 단계교가 놓여 있고 거기에 오리쯤 서쪽에 단계선생의 묘소(선산읍 죽장리 고방산)가 있으며, 비봉산 아래 선생의 유허비각이 있다. 의를 위하여 목숨을 버린 선생의 교훈은 민족 역사상 영원한 귀감이 될 것이다. 숙종 때에 나라에서 그의 충성심에 감동하여 벼슬을 다시 내렸고, 영조 34년(1758) 이조 판서를 증하고 충렬(忠烈)의 시호를 내림과 함께 장릉충신단 숙모전에 배향하고 사림이 충절과 덕행을 추모하여 서산(西山) 및 월암(月岩)서원을 세웠다.

참고문헌 : 이조실록, 퇴계 이황의 채언록, 삼인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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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21-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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