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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을 빛낸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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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양현창의8의사

활동시기
조선시대

상세설명

신해 : 하양읍 남하동 출생. 신숭겸의 후손이다 . 임진란에 하양 지방의 창의한 의군의 의병장으로서 영천성을 화공하는데 참전하였다. 난후 그 공훈으로 선무원종훈 二등의 녹권을 받고 인동 부사를 제수받았다. 그에게 후손이 끊어졌음으로, 신해의 외손자 통제사 김시성의 후손이 해마다 묘제를 모시고 있다.

황경림 : 자는 경서요, 호를 면와라 하였다. 황희 정승의 후손이다. 임진란에 신해와 더불어 창의한 하양 향병을 이끌고 영천의 싸움에 참가하여 성을 회복하였고 신해가 진지를 옮긴 후에 하양 의병의 대장이 되고 정유재란에는 창녕 화왕산성에서 곽재우에 협력하여 성을 지켰다. 왜병이 물러간 후는 은거하였다. 사후에 안심 동곡에 동호사를 세워 향사하였다.

김거 : 자는 가화요, 호를 학보라고 한다. 와촌에 살고 있었다. 임란 때 의병을 창기하여 곽재우에 호응하여 화왕산성에서 함께 수성하였다. 화왕성 동고록에 기재되어 있다. 그 군공으로 현릉 창봉에 천거되었다.

허대윤 : 허조의 후손이다. 자는 비승이요, 호는 훈재이다. 임란에 나이 29세로 아우 경윤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여러번 전공을 세웠으므로 선무 원종훈 三등에 오르고, 분순위 수문장을 지냈다.

허경윤 : 자는 윤승이요, 호를 치재라고 하였다. 임란 때 27세로 형 대윤을 따라 의병을 일으켜 싸운 공으로 선무원종훈 三등에 오르고 적순부위 수문장을 지냈다.

박능정 : 본관은 울산이다. 5대조 진사 박호가 고려 말 공민왕 때 요승 신돈이 행세하는 꼴을 꺼리어 벼슬할 생각을 끊고 하양으로 이거해와서 세거하여 왔다. 박능정은 벼슬이 훈련원 첨정에 올랐는데 임진란에 의병을 모아 울산 서생진에서 왜적에 대항하여 싸우다가 순절하였다.(울주지에 기록되었음)

박붕 : 박능정의 아들이다. 학문과 행실이 뛰어나므로 훈도에 천거되었다. 임진란에 의거를 하여 하양현의 수성장이 되어서 전후 5년을 항전한 공적이 영남여지에 기록되어 있다.

허응길 : 하양인 허조의 후손이다. 임진란 때 현풍 현감으로 의거를 부르짖고 곽재우가 지키는 화왕산성에 입성하여 공적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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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21-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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