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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을 빛낸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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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인걸

사호
활동시기
조선시대
본관
출생시기
시대

상세설명

본관은 부계(缶溪)이며 자는 사호(士豪)이고 문광공 귀달(貴達)의 후손으로 1581년(선조 14년)에 태어나 1639년(인조 17년)에 세상을 떠난 충신이다. 1616년(광해군 8년)에 35세로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宣傳官) 부장(部將) 웅천현감(熊川縣監) 내금위장(內禁衛將) 선천방어사(宣川防禦使)를 거쳐 병자호란 때에는 영남전운사 창주군수(昌州郡守)를 역임하였다. 1633년(인조 11년)에는 명(明)나라에 사신과 같이 파견되어 수륙 만리를 오고 갈 때 허다한 어려움을 용맹과 지략으로 잘 극복하여 무사히 귀국하여 그의 공로를 치하하는 벼슬을 내리니 노부께 돌려 효성을 다 하였다.

또 병자호란 중에는 병마를 거느리고 강화도에서 청군과 싸워 공을 세움으로 충의를 다 하였다. 그의 충절과 지략이 무장이었음은 충민공 임경업(林慶業) 장군의 입청일기(入淸日記)에 기록되어 있다. 또 평난 후에도 많은 선정을 하였음으로 충효사(忠孝祠)를 지어 제사지내게 하였으며, 선조께서 문무를 겸비한 그를 크게 칭찬하고 어여삐 보아 당(唐)나라의 문장가 한유(閒愈)의 권학시 일부 66자를 써서 그에게 내리시니 문경군 호계면 호계리에 어필각을 지어 보존되고 있는데 어필 원문의 뜻을 새겨 보면 다음과 같다.

두 집에 아들나니 그 모습 같기도 하여라
자라며 모여노는 그 재롱
물고기 떼 지어 다니는 것과 다를게 없네.
열 두 셋 시절에 재능이 서로 차이나
약관에 이르니 격차 더욱 심하여
맑은 개울과 시궁창 갈고
서른살 되니 골격 드러나 하나는 용이 되고 하나는 돼지처럼 되었다네.
용마는 달리는데 두꺼비 돌아 볼순가.
한 사람은 마부되어 채찍 맞아 그 등에 구더기 실었는데
한 사람 벼슬 높아 부중에 살더라.
묻노니 어찌 그런가? 그 모두 배우고 안 배운 탓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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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21-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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