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글자 굵게글자 크게글자 작게인쇄

경북을 빛낸 인물

no image

황응청

청지/대해
활동시기
조선시대
본관
출생시기
시대

상세설명

기성면 정명리에서 태어났으며 호는 대해, 이름은 응청, 자는 청지로서 타고난 천품이 대인의 기상이며 학문과 문장에 뛰어난 사람으로 명종대왕께서 세자가 글을 배우기 시작하자 그 경사를 축하하기 위하여 과거를 보일 때 응시차 시험장에 들어가 책제를 보니 마음에 들지 않아 응시하지 아니하고 고향에 돌아와 오직 학문 연구에만 힘썼다.

1567년에 임금께서 초야에 묻힌 학자를 천거하라고 명하니 선생의 덕망이 높다는 보고를 받고 즉시 예빈사 참봉에 임명하였으나 부임치 않으니 다시 개성 연은전 참봉에 임명하니 부임 2개월만에 사표를 내고 고향에 돌아 왔다.

그 후 임진왜란 뒤라 민생은 도탄에 빠지고 정치는 무질서하여 이의 개선방안을 제시하니 임금께서 매우 가상히 여겨 그대로 시행하라고 이조에 명하여 시행케 하는 한편 벼슬을 주어 등용하니 진보현감이 되었다. 부임지에 부임하여 많은 공적을 남기고 2년 후에 다시 고향에 돌아와 진리를 탐구 하였다. 아계 이산해 선생이 황보에 귀양 왔을 때 매일같이 찾아와 글도 짓고 서로 존경하였다.

또한 선생은 효성이 지극하여 부모의 생전에 공경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어머니가 돌아가심에 3년 거시할 때 매일 한번씩 집에 와 아버님을 뵈옵고 갔지만 한번도 내실에 들린 사실이 없어 효자로서 소문이 나니 1607년 선조대왕께서 이 소식을 듣고 효자각을 지으라고 은전을 베푸니 생시에 선각을 짓은 일은 전국을 통해 별로 없는 일이었다.

또한 향헌을 만들어 생활의 규범으로 하고 예도를 지키니 오늘의 이 곳 예도와 생활규범은 그때 선생이 행하던 것이 전승되어 온 것이다.

OPEN 공공누리 공공저작물 자유이용허락 3유형 : 출처표시필요,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금지

이 게시물은 공공누리 제3유형(출처표시 + 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자유롭게 이용이 가능합니다.

담당부서 :
경상북도청
담당자
행복콜센터
연락처 :
1522-0120
최종수정일
2021-04-05
페이지 만족도 및 의견

이 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정보에 대하여 만족하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