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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을 빛낸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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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만

활동시기
근대이후

상세설명

독립운동가 권인환(權寅煥)선생의 아들로서 입암면 사창(泗蒼, 屛玉洞)에서 태어났다. 일찍이 아버지를 따라 의병활동에 참가하였었다. 1915년에 박상진(朴尙鎭), 우재룡(禹在龍), 김한종(金漢鐘), 정운골(鄭雲馹), 양제안(梁濟安) 등과 함께 대구 달성공원에서 비밀 결사인 광복회(光復會)를 조직하여 참모장(參謀長)이 되었다. 1917년 봄에 우재룡과 함께 경주 광명리에서 대구로 수송 중이던 경주 영덕 영일 3군(郡)의 세금 8,700원을 탈취하여 군자금에 충당하였다. 당시의 이 금액은 거액(巨額)이었다.

1920년 2월 우재룡 심영택 등과 함께 주비단(籌備團)을 조직하고 군자금(軍資金)을 모아 상해(上海)에 있는 임시정부에 보내어 해외(海外)의 광복 운동을 후원하는 한편 만주에 있는 북로군정서(北路軍政署)의 밀령(密令)을 받아 미국 의원단의 내한(內韓)을 계기(契機)로 총독부(總督府), 수뇌부(首腦部)의 암살을 계획하다가 왜경에 체포되어 8년형의 옥고(獄苦)를 치렀다. 또한 대종교(大倧敎)에 입교하여 참교(參敎), 지교(知敎) 등의 교직을 맡아 종교운동에도 참여한 바 있다. 조국광복 후 1963년 대한민국건국공로훈장 단장(單章)이 수여되었다. 권영만(權 永萬) 참모장은 진실로 용맹과감(勇猛果敢)한 전형적(典型的)인 독립투사이었다. 1964년에 별세하였다.

참고문헌 : 영양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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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21-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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