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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을 빛낸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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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안방

여주/
활동시기
조선시대
본관
출생시기
시대

상세설명

곽안방선생의 휘는 안방(安邦)이요 자는 여주(汝柱)이며 암곡 곽경(巖谷 郭鏡))선생의 후예로 의영고사 곽득종(義盈庫使 郭得宗)선생의 아들이다. 선생은 세종(世宗)때에 해남현감(海南懸監), 익산군수(益山郡守)를 역임하고 봉열대부(奉列大夫)에 올랐으며 1467년(세조 13년)에 이시애 란(李施愛 亂)이 일어나자 군공으로써 원종공신(原從功臣)에 오르고 청백리(靑白吏)에 록선되었다. 선생은 무과로서 벼슬에 올랐으나 몸 가짐이 우사로써 교유한 선비들이 당배의 명류들이였으며 또한 선생이 관직에 있을때 청백함이 빙옥(氷玉) 같아서 왕래할때 단기 필마로서 행장이 표연 하였다 한다.

선생이 일찍이 익산(益山)에서 임기를 마치고 돌아오다가 종자가 한쇄철을 차고 있음을 보고 깜짝 놀라 일으되 <관가의 물건에 크고 작음이 무엇 다르랴>하고 관에 돌리도록 하였으니 그 깨끗함이 이와 같았다. 후에 청백사인 현풍 이양서원(이陽書院)에 향사 하였다.

참고문헌 : 한국인의 족보,국사대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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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21-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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