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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을 빛낸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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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경

활동시기
조선시대

상세설명

권경은 어릴 때부터 효자였다. 그의 어머니는 그를 엄하게 가르쳤으니 매사에 법도와 예의에 어긋남이 없도록 하고 항상 책을 가까이 하게 하였다. 언제나 어버이 말이라면 거역하는 일이 없고 아침 저녁 지성으로 봉양하는 마음가짐은 누가 보아도 그야말로 천심에서 우러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가 지성으로 모신 노모가 돌아가시게 되니 그는 가슴을 치며 애통해하면서 장례를 치루고 여막을 지키고 있었더니 하루는 꿈에 신인이 나타나서 쪽지를 주고 사라지기에 펴서보니
"어대천척 시군장(관어대의 넓은 땅은 너의 고장이다)"
라고 적혀 있어 길조라고 크게 기뻐하고 관어대에 만송당이라는 정자를 짓고 거기에서 살게 되었으니 사람들이 모두이는 그 효성에 감동하여 신인이 점지해 준 것이라고 하였다.

그는 부제학 권자홍의 7세손이고 사복시정 권의협의 아들이며 태어날때부터 그 모습이 인자하고 부드러웠으며 모든 일을 규모있게 하였고 일찍이 하담 김시양에게 학문을 익혀 학덕이 날로 성취하여 사람들이 많이 따랐다 한다. 어버이로부터 받은 교양으로 항상 자기 자신을 엄하게 다루고 법도에 어긋난 짓을 한 일이 없으며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는 의관과 복제를 단정히 하고 꿇어 앉아 학문을 닦고 또한 제자 및 후학들에게도 그렇게 교육을 시키니 그 제자들 가운데 많은 인사가 배출되었다.

그의 학행과 덕망이 영해 고을에 널리 퍼지고 그 후학들이 흠모해 마지 않으니 뒤에 숙종대왕 37년에 조정에서 지평 벼슬을 추증하고 다시 축산면 도곡동 도계정사에 그를 추가 배향하게 되었다. 그의 묘는 축산면 대곡동에 있으며 영상 번암 채제공이 묘갈명을 썼으며 그의 후손은 영해면 괴시동에 세거하게 되었다.

자료출처 : 영영승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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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21-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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