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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을 빛낸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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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부이씨

활동시기
조선시대

상세설명

효부는 전주 이씨 회원의 딸로 연안 이씨 현식의 아내가 되었다. 18세에 시집을 가니 집안이 갑자기 망하여 쌀 한 톨, 간장 한 그릇이 없을 정도로 몰락했다.
"제가 잘못 들어와 이 댁이 이렇게 되었사옵니다. 이 불효를 어찌하오리까!"
가정의 불운을 모두 자신의 부덕한 탓으로 돌리고 시어머님께 진심으로 사죄했다. 효부 이씨는 남편의 뜻을 쫓아 낮에는 남의 방아를 찧어주고 밤에는 잠을 잊고 길쌈을 하여 생계를 이어가는 한편, 시어머님 식성에 맞는 음식을 장만하기에 온갖 정성을 다 했다.

설상가상으로 시어머니가 설증(泄症)으로 여러 날 앓아 몸이 허약할 대로 허약해짐을 보자 용하다는 의원은 다 찾아다니며 처방을 냈으나,
"허약한 탓이니 고기라도 먹으면 나을 것 같소. 특히 생선이 좋겠소."
할 뿐이었다. 효부 이씨는 남편에게 이르기를 생선을 사다 해 드리지 못할망정 민물고기라도 잡아다 드리자고 했다.

이날부터 두 부부는 밤이면 횃불을 들고 동구 앞 도랑으로 나갔으나 겨울이라 얼음을 깨고 찬물에 맨발로 들어서야만 했다. 지성이면 감천이란 말이 있듯이 이들이 깬 얼음 밑에는 의외로 고기가 많았고, 이 지극한 효성에 시어머니의 건강도 차츰 좋아졌다. 시어머니가 명대로 다 살고 임종에 가까웠을 때 효부는,
"천명은 이미 정해져 이 이별을 인력으로야 어찌 당하오리까마는, 살아 생전에 지은 불효, 소부의 이 한은 어찌하시려 하옵니까!"
하고 통곡하며 자신의 불효했음을 도리어 사죄하니 집안에서는 물론, 이웃들까지 이 출천의 효심에 감동하여 목 놓아 울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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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21-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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