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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을 빛낸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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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사상

상지/월보
활동시기
조선시대
본관
진주
출생시기
1519년
시대

상세설명

본관은 진주(晋州)이며 자는 상지(尙之)이고 호는 월보(月甫)로 조선조 연산군 갑자사화에 화를 입은 대사어(大司語) 형의 증손이오 사인(舍人) 온(溫)의 아들이다. 1519년 문경군(聞慶郡) 산양면(山陽面) 존도리(存道里)에서 출생하여 1546년(명종 1년) 문과에 급제 한림(翰林) 이랑(吏郞)을 거쳐 삼사(三司)의 장관으로 예문관(禮文館) 제학(提學), 병조판서(兵曹判書) 우의정(右議政)을 역임하였고, 1581년(선조 14년) 세상을 떠나니 정정(貞靖)이란 시호를 내렸다. 그의 천성이 엄정하여 법도가 있고 말과 웃음을 헛되게 하지 않고 평상시에도 아무리 더워도 옷과 띠를 정제하며 게으름이 없었다.

일찍이 이량(李樑)이 세도할 때 그와 동갑이라고 친하고저 하였으나 그는 듣지 않았으며 청백함을 지켜 문앞에 잡된 손이 없었다. 그의 자제들이 그가 사퇴 후 준비로 적은 전장(田庄)을 이룩하고저 하니 그는 웃으며 말하기를 [벼슬하는 사람들이 물러가지 못할까 걱정이지 물러가 살곳이 없을까 걱정인가]하였다. 석담일기(石潭日記)에 이르기를 그가 벼슬한지 삼십 년에 일찍이 한말이라도 시사(時仕)를 논하지 않고 늘 말하기를 나라의 치난은 하늘에 있고 사람의 힘에 있지 않다 하며 정승의 자리에 있으면서도 공론을 벌리지 아니하고 사사로운 정에도 따르지 않으며 자연의 순리에 맡길 뿐이더라 하였다.

술을 좋아하면서도 취하면 더욱 말이 없으며 사람을 대하면 코만 문지르니 세상에서 문비 재상이라고 일컬었다. 선조께서 좋은 술과 관락(官樂)을 하사하고 잔치를 베풀게 명하니 이는 전례 없는 일이었다. 말없이 정치하며 실천에 옮기니 자연은 거짓이 없으며 바른일 뿐임을 믿어 실천 하였으니 후인은 이를 널리 찬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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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21-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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